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12일차,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사회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잇는가? 자유란 무엇인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것?

일정한 제한?

그 선은?

존중되어야 할 자유와 제한되어야 할 자유?

 

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인간은 자유롭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유롭다.

그러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멋대로 해서는 안된다.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있다. 

사회의 은혜를 바든한, 역시 사람도 자유의 일부를 제한받으며 어떤 의무를 진다.

 

법률을 준수하고, 규칙 및 도덕을 지키는 한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가 중요하다 해도 노동과 희생을 부담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것은 제한되어야 한다.

 

사회와 개인이라는 관계성 속에서 타당한 자유, 바람직한 자유의 모습을 생각하고 제시

 

오늘은 밀의 자유론에 대해 한번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는 중세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에도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딜레마 중 하나였다. 탈무드에서 지혜로운 판결을 내리는 솔로몬이 있었고, 우리나라도 늘 고을을 다스리는 곳의 집행관이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는 했다. 늘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다보면 타인과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공간적 제약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철학자 밀은 인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롭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선택의 결과에는 공간적, 시간적, 물질적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무한정적인 자유의 추구는 반드시 누군가의 자유와 만나게 된다. 그런의미에서 일견 매우 타당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공간의 제약이 없어진 지금의 자유는 어떤 모습인가? 대게 사람들은 본인의 무조건적인 자유의지의 주장은 인터넷에서 표출하고 있다. 익명성에 숨어 알지도 못하는 타인, 유명인을 흠잡고 공격하고 때로는 거짓말을 지어내 사회적인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인가? 때로는 이런 무서운 자유가 한사람의 생명을 짓밟고,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 국가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법이라는 수단으로 게시자를 찾고,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사후책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국가와 사회라는 범주를 넘어 세계라는 범주에 이르게 되면 아무것도 할수없는 무방비 상태에 이르게 된다. 

 

특히, 오늘날의 인터넷 기술은 그런 익명성을 더욱 심화시키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텔레그램, 다크웹과 같은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는 기술을 더욱 선호하게 되는 것도 바로 제약받지 않는 자유를 많은 이들이 갈망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를 보장하고 싶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본인은 그 어플을 사용하고, 스스로를 더 감추려고 하는 것도 아마 많은 뉴스나 사건을 통해 접했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어디에서도 제약받지 않는 자유를 좀 더 선호하며 이것이 마치 사회의 정의인 양 추앙하기도 한다. 

 

이를 본다면,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대한 희생과 의무를 져야만 한다는 밀의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아마, 현대사회에 무조건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무를 지어야 하는 사회라는 틀이 약해져가고 있다. 더욱이 환경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는 그것을 마땅히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보인다. 온난화에 맞서 몇십년전부터 전 지구적인 논의가 활발해져가고 있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아무런 제약장치 없이 우리의 지구는 종말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일부에서는지구의 운명을 바꿀수있는 임계점이 훨씬 더 지나, 지금부터의 우리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인간의 자유를 넘어서, 국가의 개발권, 국가의 번영권을 기지로 지난 100년간, 특히 50년간 우리 인류는 지구를 망가트리는 모든 활동에 앞장섰다. 먼저 개발을 완료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인류 공헌을 위해 많은 규약과 협약을 통해 그것을 늦추려고 노력하자고 제안하였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후발 주자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지구를 위해 자신들만 희생하라는 것이 매우 불합리 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공유지의 비극" 이라는 사회적 용어에 딱 들어맞는 결과가 아닐까. 

 

이렇듯, 어떠한 강력한 구속과 제약의 명확한 주체가 없다면, 우리 사회의 자유에 대한 주장, 권리보장에 대한 욕구는 점차 확대 될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일들이 아주 더 많이 가속 화 될것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 자체가 무엇인지 알수없는 상황이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로 하나의 사회를 만들고 법률을 지켜간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아마, 전인류적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일개 개개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나 제약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인간은 그런 제약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보이는 가시적인 갈등이나 피해를 직접 느끼지 않는 이상 인간의 마음이 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자유를 무한정으로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파멸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자정능력이나, 사회적인 합의와 제약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세계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 인류에게 이로울 만한 행동을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론적인 이야기밖에 할수없어지는 것일까 궁금하다. 세계화시대의 자유는 대체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