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문서로 기록되고 증명되고 존재하는 사회이다. 내가 평생 살아오던 땅도 문서로 내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내것이 아닌 사회 그것이 바로 인간사회이다.
인간은 이야기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하나 되는 결속력을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기는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문자를 만들고 기록을 하기에 이르렀다. 기록이 시작되면서 내것과 남의 것을 구분지을 수 있었고,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사회의 모습이 바로 이 기록에서 시작된다. 내가 쌀을 얼마나 바쳤는지, 우리집 땅은 무엇인지 기록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진다. 조선시대 말 노비가 족보를 산것도 바로 같은 논리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실제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록이 존재하면 그 존재가 생기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분쟁이 있고 다툼이 있을 때는 계약서를 늘 신봉한다. 그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넣었거나 뺏던 그 문구 하나에 울고 웃는 일이 다반사이다. 사람의 말보다 기억보다, 그 문서를 더 신뢰한다. 이렇게 인간은 문서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힘을 가졌으며 더욱 복잡한 사회에 이르르게 되었다.
정보가 더 많아지고 복잡해지면서 그 문서를 적시에 활용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졌다. 우리도 몇명 안되는 가족의 전화번호는 외울 수 있어도, 친구의 전화번호는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정보의 과부화는 또다른 부작용을 일으켰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 적시에 찾을 수 없는 정보와 같은 문제가 계속 생겨났고 결국 우리는 그것을 세분화, 전문화 하기에 이르렀다. 직업도 다양해졌다. 사회의 모습은 더욱 다양해졌고 분업이 일상회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잇는 "관료제" 사회이다.
병이 나서 의사를 찾아가야 할때 전문 분야를 찾아 가야 하듯, 변호사를 고를때도 전문가를 골라야 하듯 모든 것이 세분화된 것이 당연한 일상이다. 가끔은 비합리적이라고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결국 이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진다.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관료제화 되면서 세분화 되면서 더 많은 힘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지난번에 언급한 상호주관적 현실의 전형이지만 그 범위가 인간에 머무르지 않고 동물과 자연 등 인간 외의 것으로 확장되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럴 수록 인간의 지배력과 힘은 더욱 강해져 갈 뿐이었다.
문서의 탄생은 인간의 정보가 더 확장되게 하였고, 관료제는 인간의 삶을 더 복잡하게 하였지만 진실과 질서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이어져 왔다.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문서와도 연결되기에 이르렀으며, 그 문서에 상당한 힘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혁명의 역사에서 가끔 나오는 대목이 문서보관소를 없애는 것이었다. 노비가 족보를 없애고, 서양의 혁명에서 문서보관소를 가장 먼저 습격했듯 문서에 귀속된 인간삶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정보량이 많아졌다고 인간의 삶이 더 고귀해지거나, 더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서 질서유지와 진실간의 중간에서 사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잇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AI미래를 낙관적으로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도 문제해결이 되기는 커녕 아마 질서와 진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동안 인간이 몰라도 될 것들. 지배자가 알리고 싶어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이 퍼져가면서 더 혼란스러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신세계라고 불리울 미래 세대는 어떤 모습으로 치닫게 될 것인가. 우리는 지구의 종말을 기다리며, 더욱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매우 섬뜩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