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정말 많이 생각해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테러리즘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음 그래, 안좋은 거지. 열심히 막아야지 라고만 생각했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8년전 테러방지법이 도입되었을 때, 많은 국회의원들과 반대세력들이 우려했던 점도 유발하라리가 짚은 맥과 같이 하지 않을까. 사실은 실체가 없는 테러에 대해 국가가 공포를 조성해서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든다고 생각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테러 청정국이다. 국내 테러 관련 사례를 보아도 사실 북한에 의한 테러? 로 추정되는 사건 말고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도 없다. 이런 나라에서 테러라는 수단을 굳이 그렇게 열심히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
테러는 한편의 영화이다. 9.11테러가 전세계에 일으킨 충격은 테러라는 단어를 신경쓰지도 않았던 현대인에게 테러라는 두 글자를 지금껏 기억하도록 했다. 테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극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실제 테러로 입힌 피해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가 핵심이다. 911테러로 미국은 천여명 국민을 잃었다. 이는 세계대전이나 여타 전쟁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다. 하지만 이 보복을 위해 20년간 엄청난 돈과 군대를 투입해 원점을 제거했다. 그리고 전세계는 테러에 대한 공포로 20년을 보냈다.
테러는 전쟁과 같은 방법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집단이 자행한다. 전쟁을 할 경우, 패배가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전면전보다는 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될 수록 그 테러는 성공하였다고 평가한다. 우리나라도 20년전 너무나도 충격적인 "참수"라는 테러를 당한적이 있지 않은가. 매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테러범이 전하는 메세지와, 참혹한 피해자들의 모습. 이 모든 사건을 생중계로 온 국민이 지켜보며 공포에 떨던 그 시간들. 결국 국민들은 국가에 무언가를 하기를 요구했고, 국가는 기존 고수했던 협상 원칙을 깨고 테러범과 합의를 하지 않았던가.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비판하는 세력도 많았다. 하지만,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이 영화같은 일을 멈추게 하는 일을 국가는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해본다.
테러는 자연재해나 범죄와는 근본적인 태생이 다르다. 대개 테러는 정치적인 목적을 이유로 발생하고, 그 대상이 죄없는 선량한 국민이다. 우리는 국가에 의무를 다하면서, 우리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받는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치권력이 이양되는 일을 원하지 않으며, 어떠한 특정 세력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럽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근대 국가의 기틀에는 공공영역에서만큼은 정치 폭력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라도 국가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두려움과 분노가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테러범이 유도했던 대로 정권과 국가에 대한 정당성이 훼손되고 불신이 가득한 상태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당성의 기반이 무너지면 정치체제가 무너질 위험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래서 각국의 정부는 필사적으로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그리고 대응하기 위해 더 크고 과한 액션을 실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북한에서 오물풍선을 보내는 일이 매우 잦아지고 있다. 이 또한 역시 테러로 볼 수 있는 가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을듯하다. 유발하라리 관점에서 보면, 가상의 공포를 만들어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테러의 정의에는 부합하다. 하지만, 테러는 대개 국가대 국가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약한 상대가 강한상대에게 자행하는 수단이다. 북한이 전면전을 택하지 않고, 오물풍선과 같은 수단으로 도발을 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에 공포를 주기 위함이다. 언제든 원하는 방향으로 생화학 테러를 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사회에 어떠한 공포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미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북한이 하는 행동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번째 공포와 혼란을 주겠다는 목적은 실패한듯 하다. 유발하라리도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테러에 있어,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고 미디어가 재생산하지 않으면 그 테러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이상한 짓이 성공하려면, 좀 더 극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가 생긴다면 우리 군이 가만있지 않을테니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테러는 "우리 나라에도 테러가 있어? 그렇게까지 해야해?" 라고 하는 상황이 가장 좋은 상황이라 말할 수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싸우고 있는 대상과 조용하고 효율성 있게 싸우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다. 개인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잊고, 미디어는 과장하지 않으며, 정부는 조용히 예방하고 신중하게 대응한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보다 테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