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공동체라는 말은 언제 생겨난 단어일까? 우리는 태어날때 자연스럽게 세계는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국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은 당연했다. 하지만, 불과 150여년전 조선은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외세들을 막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서구와 일본이 여러차례 침략을 시도했고, 결국 우리 문호는 열렸다. 이를 두고 우리는 치욕스러운 강화도 조약이라고 배웠다. 과거 선조들은 세계를 하나로 보지 않았다. 가까이 있는 중국과 일본도 같지 않았다.
문명이란 인류가 이룩한 다방면의 특별한 발전을 칭한다. 새뮤얼 헌팅턴은 세계의 문명권을 8개로 분류하였다. 그 중 동아시아 문명을 중국과 일본문화권 두개로 나누어 분류한데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양 역사에서 볼 때 중국과 우리나라는 같은 문화권으로 오해할 소지가 없지 않다. 이렇듯 문명이라는 대상 자체가 칼로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관점과 이해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몇백년전까지 인간은 어디에 살고있는가에 따라 매우 다른 삶을 살아왔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존재조차 몰랐다. 교류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각각 스스로가 터득한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또한 매우 달랐다. 이는 8대 문명으로 분류되는 특수한 문화권을 형성하며 독특한 문화적 유산을 남길 수 있었다. 이렇게 과거에 남겨진 문명 혹은 문화를 바탕으로 각 국가마다 고유한 특징과 종교가 형성되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어떠한가? 여전히 수십억 아프리카인들은 소중한 전통유산을 따르며 인터넷을 쓰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사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애플 노트북과 아이폰을 쓰며 전세계와 소통하려고 한다. 아주 소수 민족만 제외하면 2024년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휴대폰을 사용하고 인터넷을 통해 소통한다. 과거에는 달랐던 인간 문명이 이제는 비슷한 모습으로 평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2024년 지구촌 문명이다.
인간은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새로운 문명을 창조했으면서도 과거에 사로잡혀 여전히 서로 싸움 중이다. 지금 현 시점에서 과거의 영토, 종교가 우리 인류의 미래를 위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불과 200여년동안 세계지도는 수백번도 더 바뀌었고,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의 힘도 과학으로 상당수 대체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때 영광스러웠던 추억을 잊지 못해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려고 하고 있다. 일부 인간들이 이렇게 어리석은 싸움을 하는 동안 과학기술은 또다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나가고 있다.
21세기가 어느덧 1/4가 지나갔다. 2000년과 지금은 또 다른 세상이다. 2050년은 지금보다 더 혁명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가능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과거에 머물러있지 말고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 현실적인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인공지능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 인간 삶을 위협할지. 또 새로운 인류와 문명을 만들어낼지 모를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글이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요새는 정말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걱정된다.....
2050년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그 미래는 어떤 삶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