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장 중대한 분리,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운전을 10년동안 해온 도시의 운전자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네비게이션을 키고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차가 너무 막혀 문명을 이용해보기로 하였다. 네비가 알려주는 지름길로 가면 무려 10분이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내가 아는 길로 갈 것인가, 새로운 길을 따라 가볼 것인가. 고민하다 나보다 더 똑똑할 인공지능을 믿어보기로 한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진 않았지만, 도로의 정체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도 네비를 켜서 운전해 볼 생각이다. 네비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오늘날 우리는 생활속에서 언급된 네비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을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에 의존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찾아준 정보나, 앱이 지시하는 대로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우리가 우리의 선택대로, 우리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결정한 것인가? 물론, 지금은 내가 네비의 말을 듣는것과 듣지 않는 것 두가지는 나의 자유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인공지능의 성능이 너무나 우수해져서 내가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홀로 낙오자가 된다면? 그때도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지난 200년 동안 개인으로서 평등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았던 것은 사회가 인간 개개인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농장에서 농사를 지을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인구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지금은 단 한명의 아이 육아도 힘들어하지만, 과거에는 10명씩 아이를 낳는 것이 표준이었던 사회였다. 그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하지만 로봇으로 많은 것이 대체되고, 첨단사회가 되어가는 지금 인간의 노동력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 결과 전세계의 출산율은 곤두박질 치고 있다. 이미 인간의 노동력이 경제성을 상실한 결과이다.
인간 개개인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것이다.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인간 집단으로서의 가치만 남을 것이다. (정말?) 대신, 과거에 그랬듯이 새로운 집단의 초인간이 평범한 인간을 대하는 그런 세계가 다시 도래할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 중시되는 사회가 도래하기 전 인간은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귀족과 노예. 아메리카인과 아프리카인, 이 분류는 과거에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인간의 구분법이었다. 가치있는 인간이 따로 있고, 나머지는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이런 사고가 없어진게 지구상에서 불과 200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회로 회귀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많은 지표들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사실 잉여인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길거리에 거지나, 노숙자들은 물론 하는 일 없이 부모밑에서 게임만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리고 이들은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인터넷 세상에서 누군가를 헐뜯거나 비난하는데 시간을 쏟으며 사회적으로 많은 낭비를 가져온다. 이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없지만, 이들 역시도 자유 인격체로서 존중 받아야 하고 똑같은 투표권이 주어지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공평한 것인가? 혹자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자유주의의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조금만 주변을 둘러봐도 그말은 변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따.
어쨋든,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는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산업화가 되면서 한가지 분야만 잘하는 전문인이 되어 분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가지를 기계로 대체하게 되면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무리 사람의 감정을 읽고 전문적인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내가 하고 있는 그 전문적인 일을 훨씬 더 잘하는 기계가 발명되면 나머지 영역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미 그런식으로 많은 분야에서 기계로의 대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일 말고도 자기 자신을 잘 아는 능력도 곧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요새 화두가 나를 알아가는 것. 내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민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기계가 나를 위해 일하고 나를 만들어 갈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수많은 결정을 의미없이 혹은 생각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입을지, 오늘 옷은 어떻게 입을지와 같은 매일 반복되는 결정들 말이다. 그저 직관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이거 라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는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인공지능이 나의 많은 선택을 대신해주고, 나를 만족시켜줄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생체 신호, 감정, 욕망 등을 더 잘 알 수있는 인공지능등이 더 많이 개발되었다. 인스타그램과 구글만 펼쳐보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나의 선호, 취향, 계획 등을 나보다 더 잘 기록하고 있고 잊고 있떤 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이런 정보들이 새로 개발될 기술과 결합된다면 정말 무서운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나의 아주 중요한 선택도 나 자신이하지 않고 이들과 함께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곧
지금 이러한 알고리즘은 단순한 조언자에 불과하다. 결정을 대신 해주지는 않고,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 삶에 더 깊게 파고 들 경우 이들은 아마 우리 삶을 결정해주는 대리인이 될 것이고, 끝끝내 내 삶을 지배하는 주권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섬뜩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삶을 피하게 될까? 아니면 더욱더 누려서 내가 더 우수한 사람이 되려고 할까.
발달하는 기술에 뒤쳐지는 것은 결국 도태를 의미한다. 나는 모든것을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할꺼야 라고 결정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아마 초인간이 되는 꿈을 꿀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알고리즘이 나를 지배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더 성능이 좋은 알고리즘을 구매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세상은 알고리즘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이미 많은 사회 영역에서 그 시작을 하고 있다. 나의 선호도를 파악해 내가 좋아하는 영상과 책을 추천해주는 것부터 시작해, 내가 가야할 길을 설정해주는 것. 그리고 인공지능이 원하는 지식을 답으로 알게끔 유도하는 GPT의 출현까지.
그렇다면 이런 알고리즘은 의식이 있는 것일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의식,사고의 틀 말이다. 앞서 우리는 인간의 의지와 마음 이 어떤 것이 그저 뉴런의 발화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 의식을 꼭 생명체만이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유기체 역시도 이런 생명체의 알고리즘을 통해 사고하고 결정한다. 이것이 이제 곧 무기체들에게도 옮겨갈 것이다. 인간의 결정과정이 옮겨간 무기체들은 이제 스스로 주인이 된다.
우리는 지금도 어떤 회사나, 국가에 인격적인 것을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이라는 회사는 생명체가 아니지만 하나의 인격체(법인)으로 취급하고, 미국이라는 국가도 전세계를 대변한다. 곧 앞으로 우리는 GPT라는 무기체에게 인격을 부여할 것이다. GPT가 그랬어, GPT가 그게 맞다는데 ?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이 곧 진리이며, 우리의 행동양식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 아닌가? 인간은 쓸모없어지고, 우리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며,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 공상과학에서만 상상해봤던 이야기인데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정말로 실현가능한 미래이다. 지금도 그 출발점에 선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그렇다면 정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저, 초인간이 될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한번 초인간이 된 계급과 그렇지 않은 계급은 더이상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생기지 않을까. 과거 노예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초인간이 될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 격변기는 대체 언제가 될 것인가.
50년 후, 몸도 마음도 노쇄한 노인이 되었을 때 아마 우리는 더욱더 쓸모없는 인간에 속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과거의 노인들처럼 지혜와 경륜을 갖추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인류가 50년동안 이루어온 엄청난 발전의 속도를 보면 50년 후 우리 인간은, 또 나는 너무나도 미개한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저 초인간이 될 열차를 탑승할 수 있게만 바라볼 뿐이겠지. 그리고 내 자손이 그런 초인간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고보면 200년간 지속되어온 자유주의는 참 멋진 이상향이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모든이의 경험이 소중하고 가치있다. 그러니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라고 외치는 이상적인 구호말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볼수없는 평등을 만들어냈고, 지금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끼는 자유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니 너무 서글퍼진다. 이런 자유가 이제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 인간의 미래는 바뀔 것이고, 지금 이 시간들을 역사속으로 간직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다. 그것도 내가 살아있는 생전에.
대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어떤 삶을 살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단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