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정도의 자유를 추구하는가? 라는 문제와 마주하는 것이 평등이다.
이 세상의 제도는 전부 '자유와 평등의 균현을 어떻게 맞출것인가' 라는 문제의 절충점을 규정한 것
자유속에 평등을 도입한 사고방식 -
자유보다 평등이 사랑받는 경향
자유가 가져오는 해악은 직접적이지만 평등이 일으키는 해악은 천천히 나타남
평등이 가져오는 해악은 조금씩 진행되므로 사람들은 상황에 익숙해져 문제를 깨닫지 못함
평등- 사회가 더 개인주의적이 되어감
어제 글을 쓰며,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인가? 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오늘 비로소, 책을 읽으며 이 부분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결국 자유와 평등은 반대 되는 개념이었다. 자유가 확장되면 평등이 줄어들고, 평등을 확장시키려면 자유가 제한되는 저울과도 같은 관계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 둘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와 같은 생각이 정리되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면 자유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평등의 파이를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자유는 제한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긴 했다. 그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평등과 어떻게 조화를 맞추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자유 철학을 갖는 것이 두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역사속의 사례로 일단 먼저 살펴보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옳을지 판단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역사는 두가지 극단 사례들을 모두 경험하였다. 형이상학적으로 평등을 강조했던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신자유주의 두가지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아직까지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체제가 굳건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평등은 언뜻보아서는 매우 이상적이고 훌륭한 표현이다. "평등"을 외치는 자는 누구나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계급사회에 익숙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더욱이 평등이라는 단어는 꿈꾸어보지도 못했다. 이들이 자유에 눈을 뜨게 되고, 자유를 보장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평등에 관심을 가지고, 모두가 동등한 삶을 누리고 싶어했다. 자유를 누리다 보니, 나보다 부족한 사람이 더 잘살게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상대가 갖고 있으니, 그것을 뺏고 싶어졌다. 그래서 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 그들의 것을 내놓으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부자는 더 잘살수있었지만, 함께 나누어야 했고,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것이 당연한 듯 그 평등을 누리고 싶어했다.
상부상조해야 사냥을 할수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아도 남의 것을 빼앗아,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나누어가질 수 있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기여의 뜻을 잃어버렸다.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아도 나눌수 있는 대상, 그것이 바로 평등이었다.
역사속에서 증명하듯,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나아갔던 국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평등만으로는 어떠한 국가도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없음이 증명된 것이었다. 평등의 해악은 서서히 나타나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매우 이상적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하향 평준화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현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국민들의 기저에는 이 평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만연해있다. 평등에 대한 주장은 매우 달콤한 꿀이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타인의 노력의 결과를 공유할 수 있고,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런 사람이 소수일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런 생각으로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더이상의 발전이 없다.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몇개의 대기업이 굉장히 큰 부를 창출해 나가며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들에게 특혜가 주어졌기 때문에 이런 성장이 가능했다며, 그 성장을 비하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기업의 성공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5년전 자료만 보아도 새로운 기업의 탄생과 소멸로 인해 기업 순위가 뒤바뀌는 것은 매우 흔한일이다. 50년전 받았던 특혜로 인해, 그 기업이 현재까지도 잘 나가니, 마땅히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말 무식한 이야기이다. 많은 시간동안 수많은 혁신과 변화로 현재까지의 성장을 이어온 것이며, 그들이 만든 기적은 그들의 것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된 노동도 한번 해보지 않고,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등에 엎고 원색적인 비난에 앞장선다. 그리고 그 선동은 굉장히 잘 먹힌다.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어떤 회사나 개인이 성공하기까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만큼 그 사람이, 그 기업이 가져갔기 때문에 마땅히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평등이 옳다고만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역사까지 갈필요도 없이 내 주변의 사례만 보더라도, 그 삶이 행복하다고 볼수 있는가? 자신의 발전을 하나도 도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욕심내고 평가하는 그 삶이 말이다.
평등은, 내가 최선을 다해 어떤것을 이룩한 뒤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파이를 키워놓고, 그 다음에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를 도입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아직도 개발도상국에서 절절매고 있었다면, 과연 상상이나 할수있었던 제도였을까?
하지만, 평등주의자들은 이런 발전의 가치에 대해서는 폄훼하고, 무조건 현 상태 그대로를 나누어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 나라의 더이상의 발전은 있을까?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이런 나라 치고 발전한 나라는 역사적으로 하나도 없다.
요새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목표이다. 다들 모두 "경제"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며, 수입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데, 그것이 진짜 자유의 의미 아닐까?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라는 틀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약없이 하는 것의 기본이 바로 수입이다. 자신이 노력으로 번 이 수입에서 자유로워 지는 순간, 인간은 진정한 자유에 돌입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 시대에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껏 쓸수 있는 자유, 살 수 있는 자유, 누릴수 잇는 자유는 결코 평등으로 얻지 못한다. 평등으로 얻은 돈은 남들도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제약된 자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고, 체감하며, 스스로 먼저 자신이 진정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