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차, 정치뉴스를 볼때마다 울분이 차오른다.
와..오늘은 이 무슨 개 삽소리를 하는 뉴스를 보는 것인가.
언제부터 헌재는 정치 집단이 된 것인가? 그동안 헌재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이제서야 자신들이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언제부터 이;꼴이 되었는가? 왜 늘 입법부와 사법부는 성역이며, 그 안에 있는 행정부는 군림을 당하는 대상인 것인가? 가장 힘없는게 행정부. 공무원 아닌가?
기가 막힌다. 사법부는 선관위와 헌재, 그리고 입법부 국회는 자기맘대로 해도 되고, 행정부는 절차와 규정 모든 걸 다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 정말 보면 볼수록 참을수가 없다. 분노가 치민다.
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무섭다. 이 갈등의 끝이 어디인지.
어휴... 나는 하던 글쓰기나 해야겠다. 늘 분노에 치밀어 뉴스를 보지 않았는데, 괜히 봤다. 또 평정심 유지가 힘들다.
이번주는 정말 논리의 기술을 내재화해야 하는 한주이다. 소중한 한주를 소중히 보내자.
어제는 결핍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부모가 주는 결핍은 인간의 전생애에 걸쳐 큰 영향을 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계속 친밀하고 강력한 애착을 형성하며 살아가야한다. 그것이 가족이다. 내가 아무리 못나도, 부족해도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친밀한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고아,노숙자,고독한 노인 이들에게 단 한명이라도 의지하고 기댈 대상이 있다면 이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 단 한사람이 없어서, 이들은 외로운 것이다. 죽어라 싸우던 우리 부모님도 결국 노년엔 서로를 의지한다. 자식은 떠났지만, 일상을 공유하고 부대끼며 얼굴을 맞이할 사람은 배우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신 것이다. 서로에게 배우자가 없었다면 너무나도 외로운 하루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얼굴을 맞이하며 밥한끼 먹을 사람도, 함께 여행을 갈 사람도, 정치적 이야기를 할 사람도.
보통 홀로 되신 부모님들이 있으면 자식들이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 역할을 자식이 해주지 않으면 그 노인은 정말 고독한 일상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제자매라도, 친한 친구라도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홀로 되신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전화로 그 외로움을 달랜다. 친구에게도 전화하고, 형제자매와 어울려 의지한다. 이런 사회적 소통이 없으면 철저히 혼자다.
세상에 혼자 남아, 돈이 많고 지위가 있고, 명예가 있으면 무엇 하랴. 나의 안부 하나 물어줄 사람 없고, 내가 이세상에 있음을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말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가족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 어리르신들에게는 자식이 많았다. 열을 낳고 한둘만 효도하여도 평생 행복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많아야 셋이다. 그렇다고 셋이 다 효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부모는 정말 축복받은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운 것이다.
부모에게 연락하는 것이 부담이 아닌, 부모와 연락하면서 정서적으로 행복해지고 편해지기 때문에 그 자식은 부모와 연락하는 것을 소흘히 하지 않느다. 고민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의논할 수 있고 늘 내 편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가 바로 부모여야 한다.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어느순간 이런 것이 어색해지면, 더이상 그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렵다. 부모보다 더 편한 친구, 그리고배우자, 그리고 또 타인이 그 자리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며 짐이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매우 축복이다. 하지만, 늘 살피고 정서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나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어느순간부터 내 일상을 전혀 공유하지 않았고 그게 어색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할 얘기도 별로 없다. 참 슬프지 않은가. 나도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전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부모님하고 얘기하면 늘 하소연하고, 별로 관심없는 이야기를 하고 이래서일까. 들어주는 것이 힘들어서 일까.
그러고 보면 자녀와의 관계도 답이나온다. 나의 이야기를 하려 하지 말고, 자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 주어야 겠다. 이 아이가 나에게 많은 일상을 공유하고 싶도록, 잘 들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겠다. 이제 사춘기에 들어서면 나는 없다 생각하고, 더 들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 늘 화내는 엄마, 나쁜 엄마가 되어잇는데, 그러지 않을 방법을 좀더 찾아봐야겠다. 관계가 더이상 나빠지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