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차, 회복 중
아프다는 이름으로 이번주는 모든 것을 쉬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것 같긴 한데, 여전히 힘이 들긴 한다. 그래도 심각한 부작용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요새 노안이 온건지 부작용인지 갑자기 글짜가 잘 안보인다. 복시.. 일까... 노안일까.. 맘껏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슬퍼진다. 노안을 막을 수는 없겠지. 수정체의 근력문제라, 예방법은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안경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안남았네.
10살쯔음 2.0까지 나오는 시력이 너무 자랑스러웠는데, 어느덧 급격히 나빠지더니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중학생부터 시력이 점차 내려갔다. 드림렌즈도 껴보고 별별짓을 다해봤지만, 이미 나빠진 시력을 되돌리기는 불가능. 그냥 안경을 10년정도 쓰다가, 회사에 입사한후 부모님께 말하지 않고 라섹 수술을 감행. 아셨으면 물론 못하게했을테니.
그 이후로 안경을 벗고 다시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네, 안경을 지금까지계속 썻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 기술 발전이 좋다.
라섹을 한후 세상이 달라졌고 내 일상도 달라졌다. 아마, 이 노안도 10-20년 안에 또 기술이 개발되 치료할 수 있겠지. 이렇게 인간의 몸은 영원이 되겠지.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고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못먹고 못배워서 한이었던 우리들의 어르신들의 삶과 지금 3-40대가 누리는 이 삶은 너무나도 다르다. 단지 태어난 시기가 달랐을 뿐인데
우리는 이 시대의 소중함을 알고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부유하게 살게 된 것도 나라가 부강해진 것도 다 그들의 피나는 헌신과 노력 덕분이라는 걸 젊은 세대들은 알고 있을까?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가장 불효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은 요즘이다. 자녀에게 열과 성을 바쳐 헌신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결국 다 장성한 자식은 그 공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자신이 어렸을적에 받지 못했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우리 자식들이 그렇다. 나도 물론 포함될 수 있겠지만, 나의 형제자매들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삶이 팍팍해지니, 부모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들은 해외유학까지 가고 대학원까지 지원을 받았으면서도 부모에게 드리는 용돈 1-20만원이 아까워서 드리지를 않는다. 그러면서 왜 우리 부모는 다른 부모들처럼 60이 넘어서도 일을 하지 않느냐고 비난한다.
사실, 나도 우리 부모님이 멀쩡한 몸을 가지고 계시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원망스럽고 싫을 때가 많았다. 왜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일까. 어디 나가서 요양보호사라도 하시면 자기 벌어 먹고 살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하찮은 일을 하며 살 생각이 없으시다. 그냥 안먹으면 안먹었지 말이다. 결국 그렇게 되니 그들은 나만 의존한다. 제일 적게 받은 자식인 내가 그들을 부양한다. 심리적으로, 금전적으로 말이다. 이는 덜 줘서 받는게 아니다.
늘 주는걸 당연하게 아이들이 생각하게 하면 결국 커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내가 효도해야할 대상이 아닌, 그냥 계속 주기만 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스스로 경제적 기반을 갖지 못한 것만을 원망한다. 그 돈이 자신들의 교육비로 들어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채 노후대비를 하지 못한 부모만을 원망한다. 그리고 내가 똑똑해서 전문직이 되고, 좋은 직장을 가진 것은 다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정말 이 한아이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과 관심을 쏟아부었을지 말이다. 물론 내가 자라던 30년전에는,지금처럼 엄청난 정신력을 투여하진 않았겠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많다보니 하나하나에 신경써주지 못했을 것이고, 직장이 사실 전부였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잘해서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이 그들의 목표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나니 퇴직하고 그들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아이들과의 정서적 유대감도, 남은 돈도, 할일도 ,취미도 말이다.
사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한 삶을 살게 하였어도, 정신적인 애착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이 않으면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이제 더이상 부모가 필요하지 않고, 그 곁은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모와 있던 시간이 그 어떤 세상의 접촉과도 편했고 의미있고 스트레스를 줄여주었다면, 그 아이는 그 이후에도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사춘기에 죽을 정도로 싸워보고, 부딪쳐도 보고, 서로도 이해도 해보아야 그 관계가 지속 된다. 철이 든 아이가 부모에게 어려움을 느끼고, 멀어지지 않는다. 대개 치열한 사춘기를 보낸 관계이거나, 부모와의 일상이 늘 일상이었던 아이들이 그 이후에도 부모에게 의존한다. 낳았다고 해서, 그 아이가 나를 계속 관심가져주고 사랑해줄 것이라 착각하면 안된다. 성인이 되면 아이의 삶이 있고, 그 아이는 부모가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부모를 찾게 될 것이다. 지금 나의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부모가 필요하지 않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예 명절에도 찾지 않는다. 안부 인사 정도만 할뿐, 참으로 슬픈 일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왜? 특이종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짐짓 짐작이 된다. 그렇다. 우린.. 아이의 20살.까지 이 시간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야 한다. 앞으로 10년, 내 인생 황금기, 정말 의미있게 보내보자. 사실 그 어느 10년보다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