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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일차, 호모데우스를 정리하며

테티스민 2024. 10. 21. 15:41

늘 독서를 하면 기록해야 한다는 모든이의 가르침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던 생각 정리하기

그저 읽기만 하는 독서는 그냥 읽었다는 느낌만 받을 뿐 정말 내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내용을 곱씹으며 생각하며,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다시 쓰다보니 내가 알고있다고 생각했지만 머리속으로는 잘 몰라서 다시 책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보고 받아적은 면도 많지만 말이다. 역시나 아는 것과 설명하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결국 호모데우스를 읽은 느낌을 20자로 요약하면

데이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사회가 오고 있다. 

 

 

마음, 영혼,

종교, 인본주의

불멸, 초인간, 

데이터, 연결, 

 

역사,과학,알고리즘

 

이런 주제에 대해 지난 이십여일동안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우리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의식, 마음, 이런것들이 결국 어디에도 실체가 없는 것이며 그저 생화학적인 뇌의 신호에 따라 수행하는 산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마땅히 숭배하지 못해 안달이 난 종교, 영혼과 같은 내세의 삶도 사실은 증명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든 허상일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무나도 알고 싶었던, 결론을 그가 명쾌히 내려주는 바람에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한층 더 수월해졌다. 저자는 최근 낸 신작 넥서스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만든 종교라는 것때문에 지금 일어나는 이 치열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싸움이 있는 것, 그 땅에서 누가 사는 것이 지금의 이런 희생을 만들어낼 만큼 중요한 것인가. 국가라는 것은, 또 종교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해주는 주제였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왔던 국가, 한민족이라는 대한민국사람으로서의 정체성, 이것 또한 실체가 있는 것일까? 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하며 각종 왜란을 치뤄내고, 625전쟁을 치뤄낸 것인가. 그리고 그 죽음을 의미있게 하는 것일까.지금도 여러 전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국경선 전쟁들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결국, 종교던 국가던, 전쟁이던 모든 어떤 하나의 인간적인 구심점을 만들고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상징적인 것일 뿐이다. 어찌보면 힘이 센 어떤 지배자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손쉬운 이상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이런 집단에 속하면서 소속감을 얻고, 자신의 삶의 의의를 찾는다. 종교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내가 이세상에 왔고, 이 모든 과정이 그의 부르심대로 이루어진다고. 국가에서는 역사 교육을 통해 이땅에 살고있는 우리가 지켜내야 할 역사적 의식을 강조하고, 한나라의 국민으로 충실히 살아가기를 원한다. 기득권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매우 손쉬운 통치 수단이다.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한 인본주의 이후부터 인간들은 개별적인 존재로 다양화되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기보다,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인간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존엄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화려한 영웅의 삶보다, 스러져가는 노동자의 삶을 더 가치있게 그린 작품들이 더 사람들의 관심이 되는 것을 보면 분명 사회는 이런 개인에게 좀더 초점을 맞추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그랬기에 유지되었던 지난 2-300년간의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는 인간의 선택을 매우 높은 가치로 평가했다. 인간 개개인은 충분히 가치있는 결정을 할 것이고, 그들의 의견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우리의 욕망과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과학도 그것을 증명해내지 못했다. 대체, 인간을 지구상의 지배종으로 만들었던 이 혁명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일단 인간의 지능이 다른 개체에 비해 높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시도가 가능했을 것이다. 높아진 지능으로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냈고, 여러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서로를 돕는 어떤 기재가 서로에게 모두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함께 어울려 호혜롭게 살아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은 어디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우리 내부의 알고리즘, 즉 똑똑한 지능이 그것을 알게 해준 것이 아닐까? 

 

이러한 마음, 의식도 이렇게 어떤 알고리즘의 조합과 명령에 의해 조작할 수 잇는 것이라면, 이제 우리보다 더 똑똑해질 AI도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미, 스스로 생각하고 발전하는 능력을 탑재한  AI가 인간보다 더 좋은 결정을 해낼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인간의 마음도 의식도 신이 딱 하고 부여해준 것이 아니라면, AI도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충분히 개발할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되면 AI가 인간을 지배하리라는 것은 누구든 예측할 수있을 것이다. 인본주의 시대 이전 어떤 국가도  귀족과 노예라는 계급이 존재했으며, 절대 바꿀수없는 조건이었다. 지금은 이런 계급화가 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는 바꿀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부 역시도 한번 고착화 되면 세습되며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아마, 후대의 세계에서 더 높은 지능을 가지는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시대가 온다면 다시 우리는 과거로 회귀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질 수 잇는자와 가질 수 없는 자로 말이다.

 

건강, 불멸을 가질 수 있는 돈이나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앞서 나갈 것이며, 유전자 조작을 통해 더 훌륭한 자손을 낳고 부를 도모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듯 그럴 능력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우수한 AI가 시키는 대로 순응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30년전만 하더라도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과제였다면 지금은 넘쳐나는 정보속에서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아마 이제 그 정보를 더 쉽게 찾아주고, 더 쉽게 해석해주는 AI가 있다면 이제 우리는 더 똑똑한 AI를 가지는 것이 우리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 될 수박에 없는 것이다. 

 

아직은, 스스로를 가상세계에 연결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노인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과거의 생각들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곳에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지금의 40대만 비교해보더라도 그들과 확연히 다르다. 학창시절부터 인터넷에 연결되며 누군가와 연결된 삶이 익숙했던 그들에게 연결이 없는 삶이란 의미 없는 삶과도 같다. 모든 일상을 인터넷에 공유하는 것부터, 최신 기기를 연구하고 따르기까지 그들에게는 삶의 일부가 아니라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 우리 세대가 노년이 되는 그 시기에는 모든 이가 인터넷 혹은 또다른 세계에 연결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아주 당연히 생각할 것이고,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찾아 다시 연결되고 다시 의미를 찾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제시해주는 나의 선호도, 나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즐기며 나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알고리즘이 찾아주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며 알고리즘을 극찬하게 될것이다. 반면, 내가 똑똑하지 못한 것은 나의 구린 알고리즘 때문이기에 나는 내 알고리즘을 최신의 것으로, 최고의 것으로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부단히 경쟁하며 많은 돈을 쓸 것이다. 지금도 인간은 GPT를 쓰는 자와 쓰지 않는 자로 나뉜다고 한다. 아직 출시된지 3년정도밖에 안되었지만, GPT를 꾸준히 사용하며 지적 능력을 향상 시킨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전혀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몇번 사용해본 경험은 있었으나, GPT를 사용하는 것이 나를 멍청하게 만들것이라 생각해서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초인간이 될 나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짜피 인간이 더이상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현실화 될 것이라면 그 열차에 빨리 올라타서 내가 더 초인간이 될 수 있도록 개조 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달전 나의 멘토 자청님이 GPT를 이용한 많은 시도를 하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저렇게 새롭기에, 다르기에 저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이 곧 올것이라면 그것을 빨리 선점해서 현명하게 먼저 다루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내가 하지 못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그는 하고 있으며, 나의 마음과 의식을 뛰어넘는 조언도 충분히 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인공지능도 계속 진화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1년에 한번씩 신제품을 내놓듯, GPT의 성능도 10년안에 인간의 모든 부분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사용하는 자와 사용하지 않는 자는 너무나도 큰 격차를 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던진 3가지 질문을 정리해보며 호모데우스 읽기를 마치려고 한다.

다시한번 읽어볼 생각이지만 말이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의 생명을 그저 데이터 처리 과정에 비유한다면, 지구상의 이 많은 생물들은 왜 있는 것일까? 좀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해서 무엇을 얻고자 함일까? 지구상에 신도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많은 생명체들은 왜 의미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저 태어났으니까? 자연의 섭리이니까? 또 이렇게 생각하면 신의 존재가 있는 물음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단지 DNA배열에 의해 생겨난 인간이라는 생명체이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이 모든 행동이 대체 어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미물인 개미조차도, 자연을 깨끗하게 하고 죽은 동식물들을 처리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지만, 우리 인간은? 그저 지배하는 것밖에 하고 있지 않은데? 대체 우리는 이 지구를, 우주를 위해 어떤 역할을 부여받고 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긴 하지만, 조금더 생각을 다듬어봐야지.

 

 

 

2. 지능과 의식 중 무엇이 더 가치있을까?

 

지능과 의식중 가치있는 것이 더 있을까? 아까의 나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보면, 높은 지능을 갖게 되면서 인간은 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 지능을 실현되게 하기 위해서는 높은 의식이 당연히 따라와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AI도 고차원적인 지능을 바탕으로 우리보다 더 높은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의식이 없다는 것은, 인간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도덕성, 측은지심 이런 것들이 없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그저 목적의식에만 도달하는 것을 고지능상태라고 보면 될까? 인간은 그런 과학적 발전에 대해 종교라는 기준을 제시해 인간이 지켜야 하는 도덕적인 것들, 기준을 제시했었다. 지능도 좀더 고차원적이 되면 AI윤리라는 것을 만들어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해 주지 않을까? 아니면 인간이 이런것을 제시할 수 잇지 않을까? 얼마전 유발하라리의 해법을 보면, AI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이런 윤리적인 한계를 지정해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같은 차원의 이야기일까?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알게 되면, 사회를 정답이 있는 이상향의 세계로 끌어갈까? 인간의 탐욕과 잘못된 이성으로 만들어진 많은 오류들을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향해 올바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들이 자기맘대로 그어놓은 국경선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분쟁들을 AI는 어떻게 판단해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될까? 스스로 판단하고 도덕적인 잣대를 그어 다시 그들만의 말도 안되는 분쟁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인간들을 소환해 파멸에 이르게 하고,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왕국을 이루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충분히 가능성 잇는 시나리오다. 

그래서 사람들이 AI시대의 미래를 끔찍하게 보며, 비극적 미래를 예언하고 잇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설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며 우리는 그저 단지 AI발전을 돕는 개미같은 존재가 되려나... 상상은 안가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늘 그랬듯 유발하라리의 책은 나의 인생관을 통채로 바꾸어놓는 혁명적인 이야기들이다. 또 이렇게 인생관을 바꾸어놓는다는 몇권의 책을 더 읽고, 인생관을 정립하는 기회로 삶는 올해를 보내야겠다.

 

이제 한살한살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고 불안한 시기이다. 벌써 40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35살까지는 이런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뭔가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정말 매일매일을 의미있게 살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잘하고 있다.

올해, 하루하루,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그 목표의 첫번째에는 글쓰기가 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올해도, 내년도, 후년도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