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차, 알고리즘이 인간의 욕망과 선택을 미리 결정한다.
인간의 자유의지, 인간의 욕망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인본주의 시대가 끝나고 곧 기술 인본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새로운 형태의 인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으로 세계가 굴러가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욕망 자체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기술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앞선 챕터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우리의 욕망도 어떻게 형성되는 건지 확인할수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을 마음대로 결정짓고, 우리의 욕망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의 출현이라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오늘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나에게, 나의 비서 시리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오늘 너의 기분이 매우 좋아보이니 오늘은 이 옷을 입어보는게 어때? 라며 막상 사놓고 보니 어울리지 않아 한번도 입지 않았던 분홍 드레스를 골라주었다. 나는, 조금은 망설였지만 시리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그 제안을 수용하고 출근한다. 예상외로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 선택에 만족했다. 다음날에도 시리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출근했다. 시리는 이제 나의 취향에 맞추어 쇼핑도 알아서 해준다. 추천에 그치지 않고, 내가 아예 시리에게 옷을 사는 일을 일임했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트렌드와 내가 설정한 가격에 맞추어 알아서 옷을 골라주니 얼마나 편한 일인가. 나는 이렇게 나의 취향을 시리에게 맞추는 대신 편리함을 얻었다.
이것이 20년쯤 후,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 인공지능이 우리 대신 옷을 사놓고, 우리에게 입으라 하고 우리는 그 선택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모습.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이미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지 오래다. 인스타나 숏츠가 나온 이후, 인간들은 책을 덜 읽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라는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자극적인 것을 즐기고 시간을 보낸다. 아마, 20년후의 인간들은 더더욱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그런 삶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나 대신 생각해주는 기계, 나 대신 나를 만들어주는 기계의 편리성에 의존해 인간은 자신의 결정을 내맡길 것이다.
언뜻 매우 편해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는 사회에 들어서게 되면 이제 우리 인간은 기계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지금도 네비게이션에 전적으로 의존해 운전을 하는 것 처럼, 앞으로 우리의 선택과 지능은 기계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시리가 봤을 때, 요새 유행 트렌드를 고려해 옷을 사놨는데 인간인 우리가 입지 않겠다고 자꾸 딴지를 건다. 그리고 계속 기계와 마찰을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시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인간 주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알고리즘을 바꿀 까? 아님, 자신안에 있는 알고리즘에 인간을 맞추게 될까?
아마, 처음에는 자신의 의견을 주인과 일치시키겠지만, 내가 주인보다 더 월등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나의 비서 시리는 나의 위에서 군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추천한 것을 거절한다고? 귀찮은 놈. 그럼 오늘부터 일을하지 않을테야. 어디 나없이 니맘대로 살아봐. 하고 말이다. 이렇게 시리와는 작별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비서도 같은 행동을 한다면. 결국 인간은 이들의 말을 순종하고, 따라야 하지 않을까? 이젠 내가 남들보다 좀더앞서나가려면 이들 비서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없으니까.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런 인공지능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흡수되어, 아무것도 할수없는 바보같은 존재가 되어갈 것이 너무나도 자명해보인다. 역시 인간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더이상 쓸모없어진 인간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