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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차, 자유의지

테티스민 2024. 10. 17. 04:17

아이의 방학이라 몇일간 글쓰기를 쉬었다.

벌써 개학한지 60일 가량 되었으니, 열심히 달려온 글쓰기 여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집중해서 무엇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시간을확보하는 수밖에

 

그래도 꾸준히 해내온 내가 대견하다..^^;

 

방학전까지 100일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인데 과연 가능할려나.

주말에도 일어날 수있다면 해내고 싶지만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과연. 경험하는 나와, 이야기하는 내가 정말 다른 것인가.

 

우리는 늘 목표를 세우고, 나는 ~을 해낼거야 라고 말을 한다. 대체 이렇게 말하는 나와, 해내지 못하는나는... 무슨 차이인가. 실천하는 나는 정말 다른 존재인것인가.

이것이 오늘의 주제가 될 자유의지이다.

 

앞선 여러 챕터에서 살펴봤듯, 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근대 사회는 인간의 내면에서 오는 경험과 선택을 가장 중요시하게 되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인간 개인의 느낌과 감정들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개개인의 선택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유의지를 형성하게 된 것일까? 자유의지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앞서 살펴본 영혼이나 신처럼 그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가,

 

저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 역시 과학적으로 아무런 실체가 없는 표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오직 유전자, 호르몬, 뉴런의 연쇄적인 생화학적 사건의 결과라 여긴다. 만약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었다면,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자연 진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의지대로 더 우수한 종으로 선택하여 결합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태라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선택은 욕망의 발현이라고 볼수있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욕망대로 행동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욕망이 시키는 대로 우리가 어떤 것을 행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 욕망을 선택할수는 없다. 내가 이런 욕망을 느끼는 것은 내 뇌에서 일어나느 생화학적 과정들이 그런 느낌을 만들어 낼 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갑자기 물이 먹고 싶어졌다. 이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인가? 나의 마음? 나의 의지? 아니,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신체적 반응이 아닌가? 그리고 물을 먹으려고 일어서야 하는 행동을 실천하는 것은 누가 하는 것인가? 나의 마음속에 있는 자유의지? 내가 물을 먹으러 가기러 했다면, 나의 의지가 귀찮음을 이긴 것이고, 포기했다면 그다지 물이 급하지 않았던 나의 세포들이 그것을 지시한 것인가? 나는 내 욕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다면 이역시도 그저 어떤 것에 대한 반응의 일부일 뿐이다. 현실에는 의식의 흐름만 존재하고 욕망은 그 흐름안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질 뿐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고 나의 욕망의 발현의 결과인 이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늘 목표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아무리 굳게 다짐해도, 현실적으로 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는 사람을 "의지인"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의지가 실체가 없다면 그저 우리 머리속에 있는 호르몬과 세포들을 조작해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집중력 모자를 개발해 전기 자극으로 우리의 뇌세포를 활성화 시켜, 초 집중 모드에 돌입할 수 있게 해주고 성과를 내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 인 것이다. 또한, 자극으로 내 안의 다른 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겁많은 내가 겁없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끔 호르몬을 조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즉,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뇌 회로를 조작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유의지라고 불리는 결과를 구매하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따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 있는 유일한 강점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수 있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동물과 인간의 차별성을 논할 때 동물은 본능대로 행동하고, 인간은 사유한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인간도 동물과 다를바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저 조금더 우수한 지능이 좀 더 고차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뇌에 연결이 동물에 비해 더욱 활발한 것일까? 아직, 이부분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이러한 일련의 사고과정은 뉴런 발화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단 하나뿐인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극에 반응에 나오는 일련의 결과로 우리의 마음을 취급한다. 인간은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좌뇌와 우뇌가 관장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연결부위를 다친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임상 사례에서 우리는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의 데이터를 연결하여 논리적으로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내면의 통역사를 통해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자기나름대로 연결시켜 해석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행동경제학자들도 인간의 선택을 주도하는 어떤 개인이 있다기 보다, 서로 충돌하는 대안들 중 하나가 발현 된 것을 우리의 선택이라고 본다. 

 

우리에 자아에는 두가지가 있다.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 하는 자아". 실제로 내가 경험한 것과 세상에 표현되는 것이 너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경험했을 것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여행의 고난, 어려움 등은 사라지고 우리의 인스타나 SNS는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찰나만을 기록한다. 우리가 하는 경험이라는 것은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결론만을 저장한다. 여행 내내 무엇을 했고, 시간별로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두를 기억할 수 잇는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여행을 통해 어떤 추억을 남겼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가 말로 다시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기억과 경험은 왜곡되거나 미화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전쟁이나,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은 그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믿는 것이다. 그 죽음이 어쨋던 간에, 그 죽음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그 희생을 값지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은 아마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종교적의미나, 영웅적인 이야기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고통의 실체를 밝혀내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한다. 환상을 갖고 사는 것이 고통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의 대부분을 버리고, 고르고 고른 몇가지 표본만 간직하고 산다. 

 

결국,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 우리 내면에는 한가지 자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하겠다고 계속 말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하는 자아와, 현실적인 수면욕, 도파민 앞에 좌절하는 경험하는 나의 끊임없는 싸움인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서도 끊임없이 서로 다투고, 한쪽이 이기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누가 나의 마음이 의지가 확고한 하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들 역시도 긴밀하게 이어진 뉴런활동의 결과라는 것인가..

 

 

 

동물 또는 로봇과는 다른 점이 이 자유의지가 아니었던가?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면 인간아닌 그 어떤 것에도 이러한 마음과 우수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다음장에 전개가 다시한번 걱정스럽다. 정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사실 어렵게 이 챕터에 대해 정리해봤는데 아직 머리속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전개하는 부분부터, 하지만 우리에게는두개의 자아가 있고 그것이 연결되어있지만 각기 충돌하고 있다는 전제자체가 매우 생소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한번쯤은 생각해 본적이 있는 주제였을 것이다. 대체 나의 방금 이결정은 누가한건지? 골프를 칠때 이 샷은 누가 한거지? 내 맘대로 모든것이 되는 것이라면 왜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샷이나오지 않았던 거지?

 

여행을 하면서 힘들었고,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잊고 다시 고행을 택하는 거지? 하는 여러가지 경험으로부터, 아마 대체 내안에 또다른 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보았을 것이다. 내 결정과 사고가 인간만이 할 수있는게 아니라면, 정말 다른 개체에게 이식시킬 수 있는 호르몬적 행동이라면? 정말 의식이 있는 또다른 생명체를 출연시킬 수 있따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사고할 수 있지만 동물은 하지 못하는 것, 뇌의 능력 즉 지능의 차이때문인 것일까? 과연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 복잡한 사고 과정이 무엇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다시한번 궁금해지는 밤이다. 이것을 조작할 수 잇따면, 세상이 원하는 길대로 앞으로 인간은 살아갈수밖에 없다는 것아닌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가장 어려운 주제이며, 어려운 사유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