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차, 인본주의 혁명
근대 사회는 인간의 내적 경험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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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사람들은 인생에 의미를 찾기 위해 신이 아닌 다른 어떤 구심점이 필요했다. 인간의 내적 경험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세상, 그것이 바로 근대가 택한 새로운 종교, 인본주의이다.
최고권위- 자유 의지, 인간의 느낌과 욕망,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과거- 보통 사람의 무지, 신의 뜻
교육- 스스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중세 유럽 지식 = 성경*논리
성경을 어떻게든 읽고 또 읽어 해석해서 의미를 찾는데 집중, 합리화
근대 지식= 경험적 데이터*수학
가치와 의미에 관한 질문은 다룰 수 없었다.
이문제에 대해 종교적 차용을 하였다. 하지만, 인본주의가 대안을 제시
인본주의 지식 = 경험*감수성
감수성-나의 감각, 감정, 생각에 주목, 미치는 영향을 받아들이는 것
최종 목표- 광범위한 경험을 통해 지식을 온전히 발현시키는 것
과거- 영웅들의 활약상에 초점
현재- 인간 내면의 감정, 느낌에 초점
세가지 분파 - 인간경험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 but 인간 경험이 의미와 권위의 최종원천임에는 동의
자유주의 - 개인의 자유의지가 가장 중요
정치는 유권자가 가장 잘알고
예술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있고
경제는 고객이 항상 옳고
윤리학은 좋게 느껴지면 하라고 하고
교육은 자기안에 답이 있다고 한다.
난민들의 삶vs 독일인의 안정된 삶
선거로 해결? NO. 다른 유권자들과 기본적인 유대감을 공유할때만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음
=> 근대 민족주의의 기반
공동경험의 가치와 개인경험의 가치를 비교할수있는가?
근본적인 갈등
사회주의
다른사람들의 경험보다 자신의 감정에 초점을 두는 자유주의를 비판
타인의 감정과 필요, 경험을 우선시
내적문제를 사회제도에 투사?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관점
공동행동을 통해서만 제도를 바꿀수 있따. 개인의 자아 탐구X, 세계를 판독해주는 노조와 당이 항상 옳다.
진화주의
한때 나치의 개념
우월한 종이 존재한다.
베토벤>일반인의 음악
초인간이 보통 인간을 지배
특정국가>미개 국가
세계는 자연선택이라는 비정한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
특정민족을 인류 진보의 엔진으로 간주
모든 인간의 경험이 똑같이 가치있지 않다.
1945년 이후, 점점 힘을 잃어가던 자유주의의 결정적인 패배는 1975년 베트남 전쟁.
자유주의를 최종적으로 구원한 것은 핵무기
21세기-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
중국의 정체성?
불멸과 가상천국을 믿는 기술 종교의 등장?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소수의 혁신가였다.
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신을 탄생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사회주의 인본주의가 성공한 이유? 당대의 기술적 경제적 현실들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았기 때문
전례없는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독창적인 생각을 해냄
- 마르크스라는 종교를 만듬.
21세기의 기술 열차가 출발하고 있음. 그 상품은 몸, 뇌, 마음
이 열차에 올라탄 사람과 아닌 사람들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
현재 자유주의는 인류에게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라고 강요
인본주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기반,
하지만 그 자유의지가 정말 자유의지가 아닐 때?
현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의 출연과, 종교와의 관계를 새롭게 되짚어 보는 굉장히 의미있는 통찰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사회 사상과 종교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종교는 모든 나라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종교는 그저 내가 찬양하는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같은 카테고리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연결이 매우 놀랍기만 하다.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종교는 의미를 잃었고 인간은 자신의 내적 경험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요즘 종교의 고민이 많은 젊은이들이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물질적 쾌락이 넘쳐나는 시대에 너무 당연한 사회현상이라고 해석해왔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잃다 보면 어쩌면 종교는 더이상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 남아있지 않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매우 절제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려고 매일 노력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며, 계속 기도 하다 보면 그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 아닌가?
나는 종교인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경험을 많이 들어보았다. 하지만, 이 역시 하느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내면의 성찰을 기도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자신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나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것을 단지, 하느님의 음성이라고 권위를 부여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따. 인간의 뇌는 어떤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보면 몰입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어떤 아이디어가 융합되었을 때 그것이 새로운 발견으로 승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것을 신의 계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현 시대의인간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는것에 가장 집중한다. 나의 행복이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다면 그것이 가장 가치있고 중요한 삶의 가치이다. 어떤 것의 법칙을 정해주거나 일방적인 지시를 하면 매우 불쾌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경험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착각속에 살아간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진화주의적 인본주의의 관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인간은 정말 평등한가? 아니, 모든 인간은 자신이 평등하고 가치있고 싶어한다. 하지만, 세상 어떤 누구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고, 모두가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싶어한다. 세상 이치에는 누군가는 지도자가 되고 누군가는 평범한 사람, 혹은 빈자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사회주의는 그것을 부정하였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역사는 훌륭한 지도자가 만드는 것이고, 그들의 결정에 따라 진보해 왔다. 평범한 99프로의 인간은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늘 초인적인 지도자나 과학자에 우리 운명을 맡겨온 것이다. 아무리 내가 똑똑해서 인터넷에서 댓글이나 다는 키보드 워리어 현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저 그사람은 모니터속에 갇혀 스스로 자기 만족감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결국 21세기에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 기술은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더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혁명은 몇몇의 과학자들이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학 기술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패러다임은 바뀌게 될 것인가. 그것이 다음장의 논의인듯 싶다.
초인간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계, 과연 우리 인간은 어떻게대응하게 될 것인지 기대된다.
정말 통찰력이 너무나도 뛰어난 책이라 하나하나 곱씹으며 책을 읽어가고 있다.